우리가 먹는 밀 중, 우리 땅에서 나고자란 밀은 단 1% 수입밀에 밀려온 우리밀의 운명을 바꿀 육종과학 기술이 개발됐다. 우주정거장에서 밀을 재배한 NASA의 기술에서 영감을 받은 세대단축 육종기술, 일명 스피드브리딩 기술이다. 세계 최초의 기술과 더불어 전국 4곳에 조성된 산업 단지, 밀 산업밸리화 단지를 통해 우리밀이 반격을 도모하고 있는데… 1%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우리밀은 성공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까? 그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을 과학 기술을 만나본다. YTN사이언스 서은수 [email protected] ======================================================== 00:00 시작 01:03 빵순이 주목! 버터향 나는 빵 축제 02:00 자급률 1%, 우리밀이 수입밀에 밀리는 이유 05:44 한국인의 취향을 저격할 품종밀 개발 08:24 한국의 실리콘밸리? 밀 산업 밸리화 단지의 모든 것 17:20 세계최초 육종기술 ‘스피드브리딩’개발 18:38 ‘엄마밀+아빠밀=?’ 밀 인공교배하는 법 20:30 스피드브리딩 기술 AtoZ ======================================================== ✔️다큐S프라임 433회 / 방송날짜 : 2026년 5월 20일 #우리밀 #국산밀 #밀밸리산업 #품종밀 #밀가루 #빵 #밀제분 #스피드브리딩 #세대단축육종기술 #식량안보 [저작권자(c) YTN science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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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미래에는 식량이 무기다 식량전쟁 대한민국 식량자급화 75-80% 반드시 필요합니다
가격이 예전부터 뮨제였던거지 우리밀이 상품성이 떨어지는게 문제는 아녔잖아.
어릴적 우리 밭에 밀을 심었다. 산넘어 마을 방안간에 엄마가 머리에 이고 가셨다. 빻아서 국수 뽑아 대나무 장대에 빨래 처럼 널어서 말렸다. 마른 국수를 가위로 잘라서 볏집으로 묶어서 비료부대에 담아서 또 엄마가 이고 오셨다. 이렇게 국수 만드는 일은 하루 종일 걸렸다. 그 때 비료 부대는 재활용하는 소중한 가재 도구 였다. 부대 안쪽에는 비닐이 있었는데, 이 봉지는 비올때 반으로 접어 고깔처럼 만들어서 우산 대신 썼다. 종이로 된 바깥 부대는 곡식을 담는 자루로 썼다. 여름 점심은 국수 삶고, 우물에서 길어온 찬물에 말아서 간장, 고추가루, 풋고추와 파 송송 썰어 넣어서 먹었다. 정말 꿀맛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맛있게 먹은거 밖에 기억이 없는데, 지금에 와서 어머니께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토종밀 적극적으로 생산 소비 찬성합니다
수입밀보다 비싸겠지만 그래도 우리밀 응원합니다
기본은 자급자족을 하고 그래도 부족한 것을 수입하는게 옳다.
밀산업 투자가 많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식량 자급자족은 필수임...................지금 수입밀이 싸서 그렇지...........나중에 수입밀이 더 비싸지면 우리 밀이 효과를 보게 된다.......그때를 위해서 우리는 미리 준비해놔야함.........응원합니다.............
우리 밀 토종밀 좋아요 대한민국의 국민들의 몸에 맞는 밀가루 식품 응원합니다 지지합니다 😊😅🎉😂❤
비씨도 먹을 사람은 먹습니다. 의존도는 낮추는게 맞습니다.
우리밀 적극적으로 소비합시다 우리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맞는 소화가 잘되는 토종식물
이제 밀 수입때 관세 엄청 매기고 밀가격은 '이때다!' 하면서 올리고 빵값도 '지금이니!' 하며 올리지
우리밀 라면 생각나네
우리나라 곡물이나 나무 꽃들조차 미국이 다 채집해가서 특허내고 재미 본거네.
7:34 앉은뱅이 밀의 역사는 우리 한민족의 역사라 불릴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조상과 함께 해왔다. 재배의 시작은 삼국시대 이전인 기원전 300년경으로 추정되며, 평안남도 대동군 미림지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밀 유적이 발견되었다. 앉은뱅이 밀은 고려 시대까지 잔치에서나 먹을 수 있는 값비싼 식재료로 대우를 받았다. 조선 시대에 들어 앉은뱅이 밀의 경작지가 크게 늘면서 서민 음식으로 탈바꿈했고, 희고 긴 모양 때문에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앉은뱅이 밀에게 고난이 찾아온 것은 한국전쟁 이후다. 전쟁을 마치고 미국의 식량 원조로 조금씩 한국에서 자리를 잡아간 수입 밀은 1960년대 들어서는 값싼 수입 밀이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밀 소비 증가와 함께 우리 밀 시장을 점령해 갔다. 앉은뱅이 밀은 값싼 수입 밀에 밀려 생사기로에 서게 된다. 1982년 밀 수입 자유화와 1984년 정부의 밀 수매가 중단되면서 그나마 명맥을 이어오던 앉은뱅이 밀과 우리 밀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앉은뱅이 밀의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는 그 명맥이 끊겼다가 2012년 백관실 진주 금곡정미소 대표가 보존하고 있던 앉은뱅이 밀을 안완식 전 농촌진흥청 연구관에게 알리면서 대중화 계기가 마련됐다.
단가경쟁이 수입밀에 된다고?
부잣집 애들만 사 먹겠네 보관비하며 생산비하며 최소 두 배 이상은 비싸겠네
우리밀 발전도 응원하지만 현미처럼 도정공정에서 품질이 여러개로 나뉘다보니 도정공정도 함께 발전했으면 더 좋겠네요.
우리밀의 발전을 기대합니다.
문제는 가격이죠 우유만 해도 수입우유보다 월등히 비싸😢😢